바흐 음악

바흐의 음악과 점성술, 수비학의 연결: 신앙인가, 암호인가?

박기자가 5분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2025. 8. 7. 14:44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바로크 음악의 절대적 거장으로 평가받지만, 그의 진정한 천재성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창작하는 데 있지 않다. 바흐는 숫자와 상징의 마스터였으며, 수학적 구조와 신학적 상징을 음악에 정교하게 녹여낸 인물이다. 최근 음악학계에서는 바흐의 작품 곳곳에서 점성술(Astrology)과 수비학(Numerology)의 흔적을 발견하며, 그가 의도적으로 음악에 비밀 코드를 숨겨 놓았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17-18세기 유럽 지식인들에게 점성술과 수비학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철학과 신학, 자연철학의 일부였다. 바흐 역시 이러한 지적 전통 속에서 성장했으며, 그의 깊은 신앙심과 결합되어 독특한 음악적 언어를 창조해냈다. 이 글에서는 바흐의 작품에 숨겨진 수비학적 요소들과 그 상징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것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된 암호 체계인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바흐의 음악을 통해 우리는 예술과 신학, 수학과 영성이 어떻게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융합될 수 있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흐의 이름 B-A-C-H: 음악적 서명을 넘어선 상징

바흐는 자신의 이름을 음악적 모티프로 활용하는 독특한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어 음계 표기법

에서 B는 B♭을, H는 B를 의미하므로, "BACH"는 B♭-A-C-B의 네 음으로 변환된다. 이 음형은 바흐의 수많은 작품에서 푸가의 주제, 악절의 마무리, 또는 작품의 핵심 동기로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예는 '푸가의 기법'(Die Kunst der Fuge) 마지막 미완성 푸가에서 B-A-C-H 모티프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바흐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는데, 마치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에 영원한 서명을 남긴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서명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수비학적 관점에서 볼 때, BACH의 각 알파벳을 숫자로 환산하면 B(2) + A(1) + C(3) + H(8) = 14가 되며, 이는 바흐가 평생에 걸쳐 특별히 애용한 숫자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바흐는 이 B-A-C-H 모티프를 종교적 맥락에서 활용했다. 그에게 자신의 이름은 단순한 개인적 표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의 표시였을 가능성이 크다. 바흐의 종교관에서는 모든 것이 신의 섭리 하에 있으며, 자신의 이름조차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고 여겼을 것이다. 따라서 B-A-C-H 모티프는 작곡가로서의 정체성과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하나로 결합된 상징적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바흐의 음악과 점성술, 수비학의 연결: 신앙인가, 암호인가?

 수비학적 숫자들: 14와 41, 그리고 신성한 숫자들의 비밀

바흐의 음악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숫자는 14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BACH의 알파벳 합계가 14이며, 이 숫자는 바흐의 작품 전반에 걸쳐 구조적 요소로 활용된다. BWV 14번 칸타타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Wär Gott nicht mit uns diese Zeit)은 의도적으로 이 번호가 부여된 것으로 보이며, 전체 구성과 세부적인 마디 구조에서도 14의 배수가 자주 나타난다.

흥미롭게도 14를 뒤집은 41도 바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것이 BACH를 역순으로 계산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바흐는 41세에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가 되었고, 이 시기부터 그의 가장 중요한 종교음악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바흐가 자신의 인생에서 이 숫자의 상징적 의미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바흐의 음악에는 전통적으로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숫자들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3은 삼위일체를 상징하며, 7은 완전함을, 12는 사도의 수와 조성 체계를 나타낸다. 특히 33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연수로 여겨지며, 바흐는 이 숫자를 종교적 작품의 구조적 요소로 활용했다. 이러한 숫자들의 사용은 단순한 작곡 기법을 넘어서, 음악을 통한 신학적 메시지 전달의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태수난곡의 숨겨진 구조: 천문학과 신학의 만남

마태수난곡(BWV 244)은 바흐의 종교음악 중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를 지닌 작품으로, 총 68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을 수비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놀라운 패턴들이 발견된다. 예수의 마지막 말씀이 등장하는 악장이 정확히 33번째 악장인 것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33은 예수의 지상 생애 연수로 여겨지는 숫자이며, 바흐가 이를 의도적으로 배치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작품 전체의 구조를 살펴보면, 주요 합창과 아리아들이 특정한 수비학적 패턴을 따라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강렬한 합창 중 하나인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Laß ihn kreuzigen)가 등장하는 악장들과 명상적인 아리아들의 위치는 모두 3, 7, 12의 배수 또는 이들 숫자와 연관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더 나아가, 마태수난곡의 두 합창단 구조는 당시 점성술적 사고와 연결될 수 있다. 17-18세기에는 대극의 원리(천상과 지상,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가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었으며, 바흐의 이중 합창단 구조는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쪽 합창단은 천상의 목소리를, 다른 쪽은 지상의 인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이 둘의 대화와 화합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구조를 보인다.

4. 바흐와 17-18세기 신비주의 전통

바흐가 점성술을 직접 실천했다는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그가 살았던 17-18세기는 점성술, 연금술, 수비학이 아직 학문의 영역에 속해 있던 시대였다. 당시의 지식인들, 특히 루터교 신학자들은 이러한 학문들을 이교적 미신이 아니라 신의 창조 질서를 이해하는 도구로 여겼다. 바흐 역시 이러한 지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그의 음악에 나타나는 수비학적 요소들은 이러한 전통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바흐의 시대 루터교에서는 '자연의 책'과 '성경의 책'이라는 이중 계시론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즉,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자연의 질서와 수학적 법칙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배경에서 바흐가 수학적 구조와 수비학적 상징을 음악에 활용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바흐의 음악에 나타나는 기하학적 대칭성과 수학적 비례는 당시의 우주론적 사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7세기의 요하네스 케플러는 천체의 운동에서 음악적 화성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천구의 음악' 개념은 바흐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바흐의 푸가들에서 보이는 정교한 대위법적 구조는 단순히 음악적 기교가 아니라, 우주적 질서에 대한 음악적 명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

바흐의 음악은 단순히 청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작품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음향의 수학, 신학적 상징, 그리고 영적 암호가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다. 수많은 음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분석할수록, 바흐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종교 철학자이자 신비주의적 창조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바흐의 음악에 나타나는 수비학적 요소들이 의도적인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 빈도와 정교함을 고려할 때, 적어도 일부는 바흐의 의도적 설계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에게 숫자는 단순한 수학적 개념이 아니라, 신의 창조 질서를 드러내는 상징이었고, 음악은 그러한 질서를 청각적으로 구현하는 매체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흐의 음악을 바라볼 때, 우리는 '듣는' 차원을 넘어서 '해석하고 묵상하는' 차원의 음악 체험을 하게 된다. 점성술과 수비학의 렌즈를 통해 바흐를 다시 바라볼 때, 그의 음악은 또 한 번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드러낸다. 바흐는 음표와 리듬, 화성과 선율을 통해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주적 질서와 신적 섭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번역해낸 것이다. 그의 음악은 청각의 성경이자 수의 성서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비밀스러운 메시지들을 해독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영적, 지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