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평균율의 진실을 살펴보며 단순한 12평균율이 아님을 확인해보자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Das Wohltemperierte Klavier)은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흔히 이 작품은 12평균율(12-tone equal temperament)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든 24개 장단조를 사용한 프렐류드와 푸가가 12평균율 시스템 하에서 완벽하게 연주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의 음악학 연구와 역사적 조율법 연구는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바흐가 사용한 '평균(Wohltemperiert)'은 현대의 12평균율과는 다른 개념이었으며, 그는 각 조성이 지닌 고유한 성격과 감정적 색채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모든 조성에서 연주 가능한 독특한 조율 체계를 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글에서는 바흐의 튜닝 체계에 숨겨진 진실을 탐구하고,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 단순히 기술적 실험이 아닌 각 조성의 개성을 극대화한 예술적 성취였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바흐의 조율 철학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음악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바흐 시대의 조율 체계: 평균율의 진정한 의미
18세기 초 바흐가 활동했던 시기는 음악사상 조율 체계의 과도기였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부터 사용되어온 순율(Just Intonation)과 피타고라스 음율(Pythagorean Tuning)은 특정 조성에서는 완벽한 협화음을 만들어냈지만, 조성 전환이나 반음계적 진행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특히 늑대음정(wolf tone)이라 불리는 극도로 불협화한 음정들이 존재했으며, 이는 자유로운 조성 전환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바흐가 사용한 '잘 조율된(Wohltemperiert)' 시스템은 현대의 12평균율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이었다. 현대의 12평균율이 모든 반음을 수학적으로 동일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바흐의 조율법은 각 조성의 고유한 성격을 보존하면서도 모든 조성에서 연주 가능하도록 하는 절충적 해결책이었다. 이는 '웰 템퍼먼트(Well Temperament)'라고 불리는 조율법의 일종으로, 순율의 아름다운 협화음과 평균율의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한 정교한 시스템이었다.
바흐는 아마도 안드레아 베르크마이스터(Andreas Werckmeister)나 게오르크 나이트하르트(Georg Neidhardt) 같은 동시대 이론가들의 조율법을 참조하거나, 자신만의 독특한 조율 체계를 개발했을 것이다. 이러한 조율법들의 공통점은 C장조와 G장조 같은 기본 조성에서는 거의 순율에 가까운 아름다운 화성을 유지하면서, 원조에서 멀어질수록 점진적으로 긴장감과 독특한 색채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조성별 감정과 성격: 바흐의 음악적 팔레트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각 조성이 지닌 고유한 감정적 성격이 음악의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바흐가 각 조성의 고유한 음향적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음악적 표현에 활용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C장조는 순수하고 단순한 성격으로 여겨졌으며, 바흐의 C장조 프렐류드는 실제로 명료하고 투명한 아르페지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C#장조는 바로크 시대에 극도로 복잡하고 인위적인 조성으로 간주되었는데, 바흐의 C#장조 프렐류드는 화려하고 기교적인 패시지로 가득하다. D단조는 전통적으로 슬픔과 비애의 조성이었으며, 바흐의 D단조 프렐류드는 실제로 깊은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바흐가 각 조성의 전통적 성격을 단순히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창적 해석을 가미했다는 점이다. F#장조 같은 조성은 당시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극도로 어려운 조성이었지만, 바흐는 이를 통해 특별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창조해냈다. 이는 각 조성이 지닌 음향학적 특성을 바흐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를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18세기의 조성 이론가들은 각 조성을 특정한 감정이나 색채와 연결지었는데, 바흐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로 발전시켰다. 그의 조성 선택은 결코 무작위가 아니었으며, 각 곡의 내용과 분위기에 가장 적합한 조성을 신중하게 선택한 결과였다.
역사적 조율법과 현대 연주의 괴리
현대의 많은 연주자들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12평균율로 연주하지만, 이는 작곡가의 본래 의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12평균율은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완전히 정착된 시스템이며, 바흐의 시대에는 아직 실험적 단계에 있었다. 더욱이 12평균율의 수학적 정확성은 각 조성의 개성을 획일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역사적 조율법으로 연주된 바흐의 음악은 현대의 12평균율 연주와는 전혀 다른 음향적 경험을 제공한다. C장조와 F장조는 더욱 순수하고 안정적으로 들리며, 반면 F#장조나 C#장조는 독특한 긴장감과 색채감을 지닌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음향학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바흐가 의도한 음악적 표현의 핵심 요소이다.
최근 들어 역사적 연주 운동(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의 발달과 함께, 많은 연주자들이 바흐 시대의 조율법을 연구하고 실제 연주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키보드 제작자들 역시 18세기 조율법에 맞춰 조율된 악기들을 제작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바흐 음악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바흐가 정확히 어떤 조율법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그가 남긴 직접적인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음악학자들은 그의 작품 분석과 동시대 이론가들의 저작을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오히려 바흐 음악 해석의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교육적, 예술적 목적
바흐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작곡한 목적은 단순히 조율 체계의 기술적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집의 원제인 "Das Wohltemperierte Clavier, oder Præludia, und Fugen durch alle Tone und Semitonia"는 "잘 조율된 클라비어, 즉 모든 온음과 반음을 통한 프렐류드와 푸가"라는 의미로, 이미 그 자체로 교육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바흐는 이 작품을 통해 건반 연주자들에게 모든 조성에서의 연주 기법을 가르치고자 했으며, 동시에 각 조성의 고유한 특성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24개의 프렐류드는 각기 다른 연주 기법과 음악적 아이디어를 담고 있으며, 24개의 푸가는 대위법적 작곡 기법의 백과사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바흐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철학을 완성된 형태로 제시했다. 각 곡은 독립된 예술 작품이면서 동시에 전체적인 음악적 우주의 일부분이다. 조성의 순서 역시 무작위가 아니라, 음악적 논리에 따라 배열되었으며, 이를 통해 청자는 음악적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단순히 기술 연마를 위한 연습곡이 아니라, 음악적 사고와 표현 능력을 기르는 종합적인 교육 과정이었다. 바흐는 학생들이 이 작품들을 통해 단순히 손가락 기교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깊이를 이해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교육적 접근법은 오늘날의 음악 교육에도 여전히 유효한 모델이 되고 있다.
결론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단순히 12평균율의 실용성을 증명하기 위한 기술적 실험작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바흐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조율 체계와 조성 이론의 집대성이며, 각 조성의 고유한 성격과 감정적 색채를 최대한 살린 예술적 성취였다. 바흐가 사용한 '잘 조율된' 시스템은 현대의 획일적인 12평균율과는 다른, 각 조성의 개성을 보존하면서도 모든 조성에서 연주 가능한 정교한 절충안이었다.
현대의 연주자와 청중들이 바흐의 음악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조율 체계와 조성 이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조율법으로 연주된 바흐의 음악은 12평균율 연주와는 전혀 다른 음향적, 감정적 경험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바흐가 의도한 진정한 음악적 메시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바흐의 조율 철학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음악 창작과 연주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획일화된 현대의 음악 환경에서 각 조성의 개성과 다양성을 추구했던 바흐의 접근법은, 음악적 표현의 풍부함과 깊이를 추구하는 모든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이 될 수 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기술적 완성도와 예술적 깊이가 완벽하게 결합된 불멸의 걸작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과 발견의 대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