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를 떠올릴 때 우리는 보통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나 '마태수난곡' 같은 완성된 걸작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바흐의 진정한 천재성은 오히려 종이 위에 기록되지 않은 순간들, 즉 그의 즉흥 연주에서 더욱 빛났다고 전해진다. 동시대인들은 바흐를 "살아있는 푸가의 신"이라 불렀으며, 그가 오르간 앞에서 펼치는 즉흥 연주는 듣는 이들을 경탄케 하는 기적 같은 체험이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이러한 찬란한 순간들의 대부분은 18세기의 공기 속에서 사라져버렸고,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바흐의 작품은 그가 실제로 창작한 음악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음악사가들은 바흐가 약 1,000여 곡 이상을 작곡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현재 전해지는 작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의 가장 놀라운 재능이었던 즉흥 연주들이 모두 시간의 강물 속으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바흐의 즉흥 연주 능력에 대한 동시대의 증언들을 살펴보고,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는 그의 작품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손실이 음악사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탐구해보고자 한다. 또한 현재 발견되고 있는 새로운 바흐 작품들과 그의 즉흥 연주 전통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함께 조명해보겠다.
바흐의 즉흥 연주: 당대 최고의 라이브 퍼포머
바흐는 18세기 독일에서 가장 뛰어난 즉흥 연주자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즉흥 연주 능력에 대한 증언은 수많은 동시대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요한 니콜라우스 포켈(Johann Nicolaus Forkel)의 《바흐 전기》(1802)에는 바흐의 즉흥 연주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담겨 있다. 포켈은 "바흐가 주어진 주제로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푸가는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작곡한 작품들보다도 더욱 완벽하고 아름다웠다"고 기록했다.
바흐의 즉흥 연주는 단순히 기교적 과시가 아니었다. 그는 청중이 제시하는 어떤 주제든 받아들여 그 자리에서 완전한 푸가로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때로는 두 개, 세 개의 주제를 동시에 사용한 복잡한 다중 푸가까지도 즉흥으로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드레스덴 궁정에서 있었던 유명한 일화에 따르면, 바흐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제시한 크로마틱한 주제를 받아 즉석에서 6성부 푸가를 연주해 모든 참석자들을 경악시켰다고 한다.
바흐의 즉흥 연주는 특히 오르간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오르간의 다양한 스톱(음색)과 여러 건반을 활용하여 그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 풍부하고 복합적인 음향을 즉석에서 만들어냈다. 함부르크 성 야코비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요한 아담 라인켄(Johann Adam Reincken)은 바흐의 즉흥 연주를 듣고 "나는 이 예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감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흐의 즉흥 연주가 단순한 개인기가 아니라 그의 작곡 교육법의 핵심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즉흥 연주를 가르쳤으며, 이를 통해 대위법과 화성학의 원리를 체득하도록 했다. 바흐에게 즉흥 연주는 음악적 사고의 가장 순수한 형태였으며, 작곡된 음악의 바탕이 되는 창작적 원동력이었다.
사라진 걸작들: 시간이 앗아간 음악의 보물들
바흐의 생전과 사후에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사라졌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현존하는 기록들을 통해 추정해보면 그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흐 자신이 작성한 목록들과 동시대인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 수의 몇 배에 달하는 음악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손실 중 하나는 바흐의 세속 칸타타들이다. 바흐는 라이프치히 시절 다양한 기념행사와 축제를 위해 수많은 세속 칸타타를 작곡했지만, 이 중 상당수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대학 축제나 시민 행사를 위해 작곡된 작품들은 일회성 공연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보존에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BWV 목록에는 약 20여 곡의 세속 칸타타만이 남아있지만, 실제로는 그 몇 배에 달하는 작품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르간 작품의 손실도 심각하다. 바흐는 평생에 걸쳐 오르간을 연주했으며, 수많은 오르간 작품을 남겼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그의 실제 작품 중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특히 바흐의 초기 작품들, 즉 뮐하우젠과 바이마르 시절의 오르간 작품들 중 상당수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흐가 다양한 교회와 궁정에서 연주했던 즉흥 연주들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음악사적으로 큰 손실이다.
실내악 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흐는 쾨텐 궁정 시절 레오폴드 공을 위해 수많은 실내악 작품을 작곡했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몇몇 바이올린 소나타와 조곡 등에 한정된다. 하지만 당시 궁정의 규모와 바흐의 지위를 고려할 때, 훨씬 많은 기악 작품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특히 바흐가 애용했던 비올라 다 감바나 리코더를 위한 작품들 중 다수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미완성 작품들과 그 속에 숨겨진 비밀
바흐의 작품 중에는 완성되지 않은 채 남겨진 것들이 있으며, 이들은 그의 창작 과정과 음악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가장 유명한 미완성 작품은 《푸가의 기법》(Die Kunst der Fuge)의 마지막 푸가다. 이 거대한 4성부 푸가는 B-A-C-H 주제가 등장하는 순간에 갑작스럽게 중단되는데, 이는 바흐의 죽음과 맞물려 있어 더욱 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푸가의 기법》의 미완성 푸가는 음악학자들에게 끊임없는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이 푸가가 어떻게 완성되었을지에 대한 다양한 추정과 복원 시도들이 있었으며, 일부 음악학자들은 바흐가 이미 완성본을 작성했지만 분실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푸가에서 바흐가 사용한 대위법적 기법들이 그의 다른 완성 작품들보다도 더욱 혁신적이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또 다른 미완성 작품으로는 《하 단조 미사》의 일부와 몇몇 칸타타들이 있다. 이들 작품에서는 바흐의 작곡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초기 스케치에서 완성된 악보까지의 변화 과정을 통해 바흐가 어떻게 음악적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미완성 부분에서는 바흐의 일반적인 작곡 관습과 다른 실험적 시도들도 발견되는데, 이는 그가 생애 말년까지도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부 미완성 작품들은 바흐의 제자들이나 아들들에 의해 완성되기도 했다. 특히 C.P.E. 바흐와 J.C. 바흐는 아버지의 미완성 작품들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완성시켰는데, 이러한 작업들은 바흐 가문의 음악적 전통과 개별적 창의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현대의 발견들과 바흐 연구의 새로운 지평
놀랍게도 21세기에 들어서도 바흐의 새로운 작품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2019년에는 라이프치히에서 바흐의 새로운 칸타타 단편이 발견되어 음악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005년에는 'Neumeister Collection'에서 바흐의 젊은 시절 오르간 작품들이 대거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발견들은 바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갱신시키고 있다.
현대의 음악학자들은 컴퓨터 분석과 필적 분석, 종이와 잉크의 화학 분석 등 첨단 기법을 동원하여 바흐의 진위 미상 작품들을 연구하고 있다. 독일의 바흐 아르히프(Bach-Archiv Leipzig)와 국제 바흐 학회는 전 세계에 흩어진 바흐 관련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또한 현대의 연주자들은 바흐의 즉흥 연주 전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바로크 음악 전문 연주자들 중에는 바흐 시대의 즉흥 연주 관습을 연구하고 실제 연주에 적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바흐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대위법적 즉흥 기법을 익혀 콘서트에서 직접 시연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바흐의 음악을 단순히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닌 살아있는 예술로 되돌려놓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바흐 연구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AI를 활용한 바흐 스타일 분석과 미완성 작품의 완성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바흐가 연주했던 18세기 교회와 궁정의 음향 환경을 재현하려는 프로젝트들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우리가 바흐의 음악을 그가 의도했던 원래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결론
바흐의 잃어버린 작품들과 즉흥 연주의 전설은 우리에게 음악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로 추앙받았던 바흐의 가장 놀라운 재능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은, 예술의 일회성과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의 즉흥 연주를 직접 들었던 사람들의 증언은 마치 전설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바흐의 진정한 천재성이 담겨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바흐 작품들도 그의 전체 창작 활동 중 일부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는 오히려 바흐 연구와 해석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새로운 작품의 발견, 기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 그리고 그의 즉흥 연주 전통을 되살리려는 현대 연주자들의 노력들은 모두 바흐의 음악적 유산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바흐의 잃어버린 음악들은 영원히 침묵 속에 머물겠지만, 그의 음악적 정신과 창작 원리는 현재에도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남겨진 작품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의 즉흥 연주 전통을 현대적 방식으로 계승하며, 혹시 모를 새로운 발견을 위해 계속해서 연구하는 것이다. 바흐의 음악은 완성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이며, 앞으로도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과 발견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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